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데르-나이세 선 (문단 편집) == 결과 == 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고 결국 최종적인 합의는 1945년 8월의 [[포츠담 회담]]에서야 이루어졌다. 포츠담 회담을 통해 양국의 국경선이 최종적으로 확정됐고, 연합국 사이의 합의에 따라 전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국경이 오데르 강과 나이세 강으로 정해짐에 따라서 이 국경선 외부에 위치했던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 동프로이센 전역과 포메른, 슐레지엔의 대부분 및 [[브란덴부르크]]의 동부 지역이 고스란히 폴란드와 소련에 넘어갔다. 덤으로 오데르-나이세 선보다 더 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슈테틴도 폴란드에 할양되었다.[* 사실 1945년 4월부터 7월까지 스탈린은 소련은 슈테틴에서 폴란드계, 독일계 지방정부를 교체하며 슈테틴의 귀속 문제를 끝까지 저울질했으며 7월 5일에 가서야 슈테틴을 동독이 아닌 폴란드에 귀속하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스탈린에게도 슈테틴 문제는 나름 힘든 결정이었다. 참고로 이 결정에 대해 트루먼과 처칠은 오데르-나이세 선을 충실히 따른다는 기존의 약속과 다르다며 항의했지만 동유럽 판도 문제는 전적으로 스탈린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를 승인했다.] 이는 폴란드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동프로이센 북부 및 서프로이센 일부 지역을 소련이 [[칼리닌그라드]] 주로 합병하고 그러다보니 폴란드에 주요 항구가 [[그단스크]] 밖에 없어서 스탈린이 떼어준 것이다. 그래서 독일-폴란드 국경은 대체로 [[오데르 강]]을 지나지만 바다와 접하는 하구에서는 독폴 국경이 오데르 강에서 벗어나서 육지를 지난다. 폴란드 영토로 새로이 편입될 구 독일 영토에 거주하던 독일계 주민들은 이미 전쟁 말기에 피난을 떠난 사람을 합쳐 거의 8백만 명에 육박했다. 또한 독일 내에서도 나치에 의해 강제로 노예노동을 하러 끌려온 폴란드인들이 꽤나 많았다. 그 때까지 남아있던 독일계 주민들을 선 서쪽으로 이주시켰는데,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강제 집단 이주이다. 또한 [[커즌 선]] 이동의 구 폴란드 영토에서 추방된 폴란드인을 신 폴란드 영토로 이주시켜 채웠다. 칼리닌그라드([[쾨니히스베르크]])를 비롯한 동프로이센 북쪽 영토는 소련(러시아, 리투아니아)에 병합되었다. 더 나아가서 스탈린은 동프로이센 전체나 동프로이센 북부 3분의 2를 소련이 차지하는 안까지 고려했지만, 이제 소련의 [[위성국가]]라 어쨌든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폴란드에 동프로이센 남부 3분의 2를 할양했다. 그렇지만 주도이자 고도인 쾨니히스베르크나 부동항인 필라우 등 구 동프로이센의 지정학적 요충지는 상당수 소련이 차지했다. 폴란드는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포메른, 슐레지엔, 브란덴부르크 및 동프로이센 남부를 할양받음으로써 커즌 선 동쪽의 영토를 잃는 대신 현 폴란드의 서부 영토 및 동프로이센 남부라는 곡창지대의 확보로 만족해야 했다. 독일과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사이의 국경선이 짧아지면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입장에서는 독일의 재침공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세 나라가 모두 [[유럽연합]] 회원국이 된 지금에야 별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독일 재통일|동서독 통일]] 당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은 것에는 이 이유가 상당히 작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